담양 소쇄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림(園林)으로 민간 최고의 정원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 양산보(1503∼1557)는 열다섯 살에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스승이 바른 정치를 구현하다 기묘사화(1519년)에 연루되어 죽게 되자,
열일곱 살에 고향인 담양으로 돌아와 소쇄원을 짓고 그곳에 머물며 평생 세상에 나가지 않고 은둔하였다.
소쇄원은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인데, 양산보는 계곡 가까이에 정자 광풍각을 세우고,
방과 대청마루가 붙은 제월당을 지어 그곳에 거처하며 조용히 독서를 하였다.
당호(堂號)인 제월(霽月)은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을 뜻한다.
“한 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해라!”
소쇄원을 만든 양산보는 후손에게 “어느 언덕이나 골짜기를 막론하고 나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 동산을 남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 것이며,
후손 어느 한 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유훈을 남겼다고 한다.
소쇄원은 정유재란 때 담양이 왜적들의 집중적인 공략을 받으면서 소실되었다가,
양산보의 손자인 양천운이 중건을 하였고, 5대손인 양경지에 의해 완전 복구가 되어 지금까지 원림을 잘 가꾸어오고 있다.
*출처 : DAUM문화유산_http://heritage.daum.net/heritage/19094.daum
무더운 여름, 어느날...
창밖을 보니 먹구름만 잔뜩한 날. 그런데 희한하게 나가고 싶었다. 멀리..................... 목적지는 '담양'
음악을 크게 '쿵짝♪쿵짝♬' 즐겨듣는 9020" 음악을 틀고 따라부르며,
비와 함께 떠난 그날,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들린 휴게소^^
화장실 한번 들리고, 커피 한잔과 Seasons 한개피를..
휴게소 광장에 있는 전차와 함께, 군시절이 생각나게 한다. 전차부대는 아니었고 홍군은 포병.
155mm 자주포와 함께 보낸 군시절. 실사격 훈련때...가 생각난다^-^
잠시 잠깐, 그립다는 생각...
비와 함께 도착한, 소쇄원.
다녀는 왔지만 머리속에 기억의 잔상이 거의 없는 곳으로 남게 되었다.
날씨도 먹구름 잔뜩. 이날은 내 마음도 먹구름 잔뜩.
그저 홀로 뚜벅뚜벅 거렸던 날.
대학생 때 부터 '소쇄원'은 가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였었는데........... 비록 이번에 다녀는 왔지만, 기억의 잔상이 너무 없다.
조용히....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함께.
한쪽 어깨엔 사진기를 메고..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 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양산보(1503-1557)는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의 정원인 소쇄원을 지었다.
정원은 계곡을 중심으로 하는 사다리꼴 형태로 되어 있다.
4.060㎡의 면적에 기능과 공간의 특성에 따라 애양단구역, 오곡문구역, 제월당구역, 광풍각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원 내에는 대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들로 된 숲이 있다.
주위에는 흙과 돌로 쌓은 자연스러운 담이 있는데 ‘애양단’, ‘오곡문’, ‘소쇄처사양공지려’의 석판과 목판글씨가 담벽에 박혀있다.
소쇄원 안에는 영조 31년(1755) 당시 소쇄원의 모습을 목판에 새긴 그림이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엿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정원이다.
*출처 : DAUM문화유산_http://heritage.daum.net/heritage/19094.daum
비와 함께, 먹 구름낀 내 마음과 함께 찾았던 '소쇄원'
그저 잡념을 떨치기위해 무작정 멀리 떠났던 날...........................그 곳에서 잠시 스쳐지나가다.
# 엑스포다리_야경 (0) | 2011.11.01 |
---|---|
# 날씨 좋은 토요일, 자전거 타고 거닐다. (0) | 2011.10.13 |
# 대전 현충원, 소경 (0) | 2011.09.26 |
# 수목원전망대의 여유Ⅱ (0) | 2011.09.15 |
# 여유와함께 한, 엑스포 남문광장_Ⅰ (0) | 2011.09.14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