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암 [落花巖]
부여 백마강변의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 바위를 가리켜 낙화암이라 부른다.
낙화암은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나당연합군)이 일시에
수륙양면으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하자,
백제의 3,000 궁녀가 백마강으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백제 멸망 이후 타사암을 미화하여 낙화암이라 부른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 『백제고기』에 따르면 백제고기에는 부여성 북쪽에 큰 바위가 있어 아래로 강물을 임하였는데
의자왕과 모든 후궁이 함께 화를 면치 못할 줄 알고 차라리 자살할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 하고
서로 이끌고 와서 강에 투신하여 죽었다 하여 타사암(墮死巖)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의자왕은 웅진성에서 항복한 후, 당에 압송된 후 병으로 죽었다.
3,000 궁녀도 부여성이 함락된 후 당의 군사들을 피해 도망치던 아녀자들이었다는 설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위면에 '落花岩'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바위 위에는 백화정(百花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서 1929년에 세운 것이다.
*출처 : DAUM백과사전
낙화암은 부소산에 있는데,부소산은 해발 106m이고 흔히 말하는 부여8경이 이곳에 있거나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백제탑의 저녁노을,고란사의 풍경소리,낙화암의 소쩍새,백마강
달빛,부소산에 내리는 부슬비,봄날 백마강 아지랭이,규암나루의
돛단배,구룔평야의 기러기떼 등을 말이다.
부소산에는 백제 성왕이 쌓았을 거라 추정되는 길이 2.2k의 산성이 남아 있다.
백제가 남긴 성의 특징은 방어를 위한 성이라는 것이다.부소산성도 마찬가지이다.
부소산성 내에는 낙화암과 고란사 외에도 서복사터 영일대터 영일루 군창지 반월루 송월대터 궁녀사등
각종 명소와 문화재가 남아 있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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